요즘 말하는 신의 직장에 다녔는데 임신하고 유산기가 있었어요.

알아보니 몇 번 유산한 선배들이 있더라고요.

돈 몇 푼(?)이랑 대단치도 않은 직장(?)이 사람 목숨보다 소중한가 싶어 과감히 그만뒀죠.

(그땐 젊어서 무서운 게 없었나봐요.^^)

몇 년 있다 재택근무를 시작했어요.

육아, 가사까지 몽땅 제 몫이 돼 힘들었지만

시간조절하며 애도 직접 보고 살림하며 일도 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그렇게 10여년 일하다 다시 출퇴근 근무를 하게 됐는데 암선고를 받았죠.

다행히 초기라 수술받고 좋아지긴 했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언제 재발할 지도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데 어떤 게 중요할까?

재택근무한다고 옆에 두고도 많이 챙겨주지 못했던 애들과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시간 갖고 싶더라고요.

맨날 동동거리며 살림과 일에 치여 살기보다 내 시간도 갖고 싶고.

남편이나 애들은 엉망인 것도 상관없는 성격인데다 제가 쭉 집에 있었기 때문에

새삼 많이 도와줄 것 같지도 않고

아무래도 계속 일하면 저만 힘들고 예민해져서

남편이랑 애들한테 신경질도 날테고

그럼 집안 살림이랑 집안 분위기, 가족 관계도 엉망이 될 것 같은데.

게다가 애들은 한창 사춘기 시작이고.

전업주부만큼 살림, 육아 하며 15년 동안 돈 벌었으면 충분치 않나 싶기도 하고.

어차피 남편은 월급쟁이고 유산 받을 건 없지만 벌이가 적지 않았고

저나 남편이나 소비와는 거리가 먼 소박한 성격인데다

애들도 학습지나 학원 없이 어느 정도 공부하는지라 사교육비도 거의 안들었거든요.

(결혼 이후 쭉 수입의 50~60%는 기본으로 저금해왔어요.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친정 식구들 표현에 의하면 "지들 몸엔 쓰는 게 없어서" ^^

 저도 남편도 제일 싫어하는 게 쇼핑이에요.)

그리고 남편은 있으면 있는대로 더 넉넉히 부모형제 퍼주고 싶어하니  

어느 순간 내가 애랑 살림을 조금 소홀히 하며 병날 만큼 열심히 일하고 아꼈는데

그만큼이 더 시댁으로 들어가고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잘 쓰고 사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당시에는 해오름도 겨우(?) 100, 200 벌자고 여자가 나가 일하면 남는 게 없다는 분위기였어요.

애들은 방치되고 교통비며 옷값, 화장품값, 교통비 빼면 뭐가 남냐고.

그래서 남들 아깝다는 직장 걷어차고

하던 일도 거의 접고 여유롭게 남편이랑 자식 챙기며 내 여가시간 즐기기로 했어요.

애들 학원도 거의 안보냈고

남들 흔히 하는 피부과, 명품, 콘도나 펜션 여행, 해외여행, 치장은 관심 밖이라

요리랑 살림하며 남는 시간엔 돈 안드는 도서관 독서랑 박물관, 무료 강연들, 서울시내 도보여행을 하니

일하며 돈 벌 때보다 돈이 쪼들리는 것도 모르겠구요.

오히려 시간이 남으니 좀더 싸고 좋은 물건 찾아다니고 제가 직접 만들어 절약할 수도 있었어요.

이제 나이가 많아지고 전업생활이 몇 년 지속되다보니

예전에 했던 쪽 일은 엄두도 못내겠네요.

평생 전업했던 분들과 거의 다를 바 없이 예전 경력은 이제 무의미하더라고요.

근데 요즘은 경기도 어렵고 남편 일자리도 불안하고 애들 교육비도 많이 드는데다

나이들어 일자리 찾는 주부들도 많아지고 그런 주부들 찾는 수요도 많아져서인지

애들이 중고등학생만 돼도, 그리고 나이가 50이 넘어도

여자가 집에 있으면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요.

몇 년 전만 해도 집에서 논다고 하는 시어머니 있으면 욕하는 분위기였는데.

꽤 호기롭기는 했지만

몇 번의 기회를 차버린 것은 그동안 누린 것이 있어 큰 후회는 없지만

지금 생각하니 아쉽기는 하네요. ^^

남편은 애들도 자립심이 강해 대학 들어간 후 용돈은 자기들이 벌어쓰고

우리도 모아둔 돈과 연금이 좀 있고 많이 쓰는 성향이 아니니

굳이 일하러 나갈 필요없다고 해요. 

다른 주부들처럼 학원비나 해외여행, 내 몸에 들이는 돈도 필요 없고. 

근데 요즘 인식들을 보면

나중에 며느리가 시어머니는 부자도 아닌데 젊어서부터 집에서 놀고먹는다고 싫어할까 걱정이에요.^^

만약 암수술 받을 때 했던 생각과 달리 오래 살게 되면  

남은 인생 동안 잉여인간처럼 취급받는 거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