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벌이 11년찹니다. 남편이 연차휴가를 소진중이라 지금 2주째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본인은 휴가를 보내면서 저는 출근을 하는 상황에 대해서 남편이 나름 제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 압니다. 어제 기어이 터질일이 터져버렸네요.
제가 집 가까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되면 집에가서 밥을 먹고 옵니다. 어제도 빠듯한 점심시간에 부랴부랴 집에 갔더니 남편이 티비를 보면서 반겨주더라구요. 맘같아선 아내가 몇시에 집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는지 잘 알고 있으면 냉장고서 반찬도 꺼내놓고 밥도 렌지에 데워놓고 저라면 그렇게 할텐데 가만히 있다가 제가 부랴부랴 상을 차리니까 와서 수저놓고 물 놓고 합디다. 화가나서 밥먹을때 한마디도 안하고 꼴도 보기싫어 안방에 들어가서 쉬다가 회사 복귀했습니다.
저녁에 퇴근길에 또 저녁꺼리가 고민이더라구요. 전.... 점심을 그리 먹어서 그런지 딱히 저녁 생각도 없고 뭐가 됬든 간단한걸로 그냥 때우고 말았으면 좋겠어서 퇴근길에 남편한테 전화해서 필요한거 없냐 나 이러이러하다 자긴 저녁 어떻할래 물었더니 집에 라면 있느냐 라면 끓여주면 라면 먹겠다 합니다.
퇴근하면서 가만 생각해보니 결혼 23년동안 살면서 자기 스스로 요리다운 요리도 한번도 해준적도 없고 심지어 자기가 먹는 라면 조차도 제게 의지하는 사람이 정말 꼴도 보기싫고 못마땅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와서 나는 간단하게 간식만 먹을테니 라면은 자기가 먹고 싶은 시간에 자기가 알아서 끓여먹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 아까는 왜 끓여준다고 해놓고 이제와서 나보고 끓여 먹으라 그러냐. 아까 하고 말이 다르지 않냐. 나보고 끓여 먹으라 했으면 퇴근길에 다른 먹을걸 사오라고 했지 않느냐..." 그러면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잡아 먹듯이 대들더라구요. 제가.... " 나 오늘 월요일이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힘들다. 오늘따라 팔도 너무 아프고 난 언능 대충먹고 쉬고 싶다" "아까 점심때부터 뭐에 삐졌는지 밥먹는 내내 말도 안하고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 내가 집에서 쉬는게 그렇게 배가 아프냐" "그게 아니다. 점심시간엔 .... 와이프가 정확히 몇시에 집에 와서 밥을 먹는지 잘 아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서 티비나 보면서 그럼 그때도 와이프가 밥 차려놓고 밥 먹어 그러면 움직일 생각이었냐" "너가 밥 차려놓으라고 미리 말 하지 않았잖냐"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르더라구요.
남편하고 살면서 이런 답답함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뭐든지 다 저한테 의지하고 제가 본인의 엄마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따졌습니다. 어머닌 도대체 아들을 어떻게 가르치셔서 나이 오십중반이 넘어도 본인 스스로 라면하나 못끓이고 나가서 돈벌다 들어온 와이프한테 라면 끓여달라 그러고 못끌려준다 그러니 저렇게 난리를 치는 거냐고... 제가 오늘 누구누구 와이프처럼 하루종일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밥사먹고 차마시고 골프나 치러다니다 들어온줄 아시느냐 00아빠 혼자 벌어서 도저히 자식 대학 등록금도 감당 못하니까 힘들어도 마지못해 나가서 돈 버는 거다. 그런 사람한테 라면 안끓여 준다고 저리 대들고 난리를 쳐야 맞는거냐... 어머니 자식 교육 잘못 시키신거다.....ㅠㅠ
몇시간뒤, 시모한테 전화가 왔네요. "니가 아까 어머닌 자식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시키셔서 이러느냐 한 말에 분해서 잠을 못 잘거 같아서 전화 했다. 평소 니가 나를 어찌 생각했으면 나한테 그런말을 하냐. 내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킨게 뭐냐. 아범이 나가서 바람을 폈냐 도둑질을 해서 경찰서에 잡혀갔냐 그깟 라면 하나때문에 그러냐. 라면 끓여주면 되지 않느냐. 너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버릇없게 말한거 너네 친정엄마한테 말해봐라 잘했다고 그러는지....... 아무리 화가 나고 그래도 어른한테 할말이 있고 안할말이 있지 " 일단은 잘못헸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지금까지도 화가 가라앉질 안습니다. 일단 저한테 이러시기 전에 당신 아들한테 먼저 야단을 치신거냐, 아들한테 며느리도 나이 50넘어서 직장생활 하고 있으면 너무 며느리한테만 의지하지 말고 너 스스로 주방일을 알아서 할줄도 알아야 한다 라고 야단치시고 알려주셨냐...... 조목조목 따지고 대들고 싶었지만 노인양반 하고 더 사이 안좋아 질까봐 꾹 참았더니 그런가 봅니다. 물론, 제가 시모한테까지 전화해서 그런말 했다는게 잘못된 행동이고 야단맞을 행동이었다는거 잘 압니다. 하지만 제가 오죽하면 그랬겠습니까. 어제도 그 난리를 치고 나서 지 스스로 결국엔 라면 끓여서 먹었습니다. 정말로 라면을 못끓이는게 아니라 하기가 싫은 겁니다. 같이 맞벌이를 해도 아내한테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인겁니다. 사이 좋을때도 누누이 나이먹어서까지 내가 최소 하루 두끼래도 매일 밥을 신경써줄수는 없다. 자기 스스로 뭐라도 해먹을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해봐야 한다 그렇게 얘기를 또하고 또하고 그랬습니다. 어찌보면 잘된일인거 같습니다. 가까이 산다고 걸핏하면 저한테 전화해서 오라가라 하시는데 이 기회에 사이가 서먹서먹 해지면 오라가라 할일도 없어질거고 저도 이참에 시가에 거리를 두고 살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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